믿음으로 말했습니다.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말했습니다. “한국교회는 사랑이다. 
국교회는 살아있다. 한국교회는 우는 이들과 함께 울고 웃는 이들과 함께 운다. 재난
당한 사람들 곁에는 한국교회가 있다.” 저는 지금 두주째 기름유출사고가 난 태안에 
있습니다. 한국교회가 밀물처럼 이곳으로 밀려오고 있습니다.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
실상이 된 현장에서 이전에 썼던 ‘믿음으로 말하라’를 묵상합니다. 
 
  믿음으로 말하라. 하나님이 이 말씀으로 요즘 제 마음을 뜨겁게 하십니다. 성경이 
믿음에 대해 정의하길 “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”라
고 했습니다. 이것을 통해 믿음으로 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시
네요. 
 
  사람은 보통 실상을 말합니다.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. 좀 쉽게 풀어보지요. 
녀가 있습니다. 부모된 우리가 자녀를 보면 그 자녀의 ‘실상’이 있고 그 자녀에게 
우리가 ‘바라는 것들의 실상’이 있습니다. 예를 들어 그 아이의 싹이 노랗다고 합시
. 소망이 없습니다. 커서 뭐가 될지 걱정입니다. 이게 아이의 실상이라고 합시다. 
이걸 있는 그대로 말 하는 것은 믿음 없이 하는 말입니다. 그저 실상을 말한겁니다. 
비록 자녀가 이렇다 할지라도 그 자녀를 향해 부모된 우리가 ‘바라는 것들의 실상’
이 있습니다. 그것을 말하는 것이 믿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. 싹이 노란 것은 부모가 
바라는 실상이 아닙니다. 부모는 그 상황에서도 그 자녀가 훌륭하게 되길 바랍니다. 
믿음의 위인이 되길 바랍니다. 
 
  믿음으로 말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자녀의 ‘실상’을 말하지 않고 부모
가 ‘바라는 것들의 실상’을 말하는 겁니다. 두 종류의 부모가 있습니다. 실상을 말
하는 부모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말하는 부모가 있습니다. 이것은 비단 자녀에게만 
국한 되는 것은 아닙니다. 모든 것에 적용됩니다. 한국교회도 실상이 있습니다. 또 우
리가 바라는 한국교회 실상이 있습니다. 우리는 한국교회는 살았고, 한국교회는 하나
, 한국교회는 사랑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. 어떤 분들이 한국교회 실상을 모르고 하
는 소리라고 얘길 합니다. 어떻게 보면 그렇게 말하는 분의 표현이 맞을지 모릅니다. 
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한국교회의 실상입니다. 그 말 속에는 우리의 믿음이 담겨있습
니다.
 
  예수를 믿는 사람,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말합니다. 그들의 말 속에는 하
나님이 하실 일이 있습니다. 하나님의 몫이 있습니다. 우리도 예수를 믿기 전에는 실
상을 말했습니다. 그러나 예수를 믿은 후에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말합니다. 놀라
운 것은 그렇게 믿음으로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실
상이 된다는 사실입니다.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 되는 이 놀라운 은혜 맛을 본 사람들
은 늘 입을 열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말합니다. 혹자에게는 이것이 아부처럼 들릴 
수도 있고, 분별력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. 왜냐하면 그 사람의 실상이 그
게 아니기 때문입니다. 그가 처한 실상이 그게 아니기 때문입니다. 그러나 이런 오해
는 받아도 좋습니다.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오해가 풀릴 것이기 때문입니다. 그가 바라
는 것들의 실상이 이내 그의 실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. 
 
  요즘 어떠십니까? , 이 질문에 우리의 실상을 말할 수도 있고, 우리가 바라는 것
들의 실상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. 대한민국은 지금 어떠한가? , 지금 우리나라의 실
상을 말할 수도 있고, 우리가 바라는 대한민국의 실상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. 믿음으
로 말하는 것은 실상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말하는 것입니다. 
 
  성경을 통해서든 아니면 삶을 통해서든 믿음의 사람들은 실상을 말하지 않고 바라
는 것들의 실상을 말했습니다.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모리
아 산으로 올라갈 때 일입니다. 아들 이삭이 묻습니다. “아버지, 불과 나무는 있는
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?”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합니다. “아들
,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.” 이것은 실상이 
아닙니다. 실상은 ‘네가 제물이란다’입니다. 아브라함은 실상을 말하지 않고 아버지
로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말했습니다. 물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
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습니다. 어떤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거짓말을 했다고 얘
길 합니다. 거짓말 한 것이 아니라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말한 겁니다. 결과는 어떻
게 되었습니까? 하나님께서 수풀에 걸린 수양 한 마리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. 아브라
함의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실상이 된 겁니다. 
 
  실상을 말하지 말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말하라. 이게 믿음으로 말하는 겁니다. 
실상을 말할 것인가,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말할 것인가. 우리는 후자입니다.

- 서울광염교회에서 보내드리는 사랑의 편지-

내일이면 2007년의 마지막 날입니다. 2008년에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주신 것들을 흘려 보내는 믿음의 가정으로 굳건히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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